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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강경 옥녀봉

논산 옥녀봉에서 바라보는 풍경1

옥녀봉은 논산 8경 중 하나로, 송재정(정자)과 봉수대에서 강경읍내나 금강을 조망하기에 좋다. 옥녀봉 정자에서 바라보면 사방이 거칠 것이 없이 훤하고,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또 부여와 익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고, 평야와 강이 조화를 이루고 저멀리 산이 배경처럼 서 있어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옛날 이 산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아주

 

맑았고, 산은 숲으로 우거져 있었으며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넓은 들이 있어 경치가 더없이 좋았다고 한다. 때문에 옥녀봉은 달 밝은 보름날 하늘나라 선녀들이 이 산마루에 내려와 경치의 아름다움을 즐겼고 맑은 강물에 목욕을 하며 놀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옥녀봉 봉수대는 전북 익산 광두원산의 봉수를 받아 황화산성, 노성봉수로 연락을 취하던 곳이다. 송재정 바로 아래편에는 국내 최초의 침례교회 예배터가 자리하고 있어 성지순례지로도 유명하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논산 가볼만한 곳 옥녀봉은 옥녀봉만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와 국내 최초의 침례교회 예배터가 있는 귀중한 장소이기에 방문하였다.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넓은 공원이 있다.

중간에 조성되어있는 논산 옥녀봉 공원

논산 옥녀봉에 올라가는 중간에 이런 공원이 있어 가족단위로 쉴 수 있도록 잘 조성되어 있었다. 그 공원에는 보고 가야 할 기념비가 하나 서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논산강경항일독립만세운동기념비가 바로 그것인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서 전개된 3·1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1985년 10월 1일 당시 논산군(지금의 논산시)이 주관하여 강경읍 독립만세운동의 시발점인 옥녀봉() 산정에 건립하였다. 강경읍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0일과 3월 20일, 2차례에 걸쳐 전개되었다. 3월 10일의 만세

 

시위는 부여군 세도면의 창영학교() 교사인 엄창섭이 주도하였다. 엄창섭은 고상준()·추병갑()과 강

경읍의 장날을 기하여 만세운동을 거행하기로 결의하고, 김종갑()·추성배()의 협력으로 태극기 200매를 제작하였다. 3월 10일 오후 3시, 엄창섭 등은 옥녀봉에 모인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고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강경

 

읍 장터까지 진출하였다. 수백 명으로 불어난 시위 군중은 만세를 부르며 일본인 거주지를 경유하여 시장과 읍내 각처를 행진하다가 주동자들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해산하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런 역사의 흔적이 있는 공원을 지나 가다 보면 돌계단이 조성되어 있다. 이 돌계단을 또 올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옥녀봉이 있다.

이렇게 말이다. 그리고 논산 가볼만한 곳 논산 옥녀봉 위에는 옥녀봉 봉수대가 위치해 있는데

논산 옥녀봉 봉수대

봉수대를 보며 논산 옥녀봉과 봉수대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면 옥녀봉의 옛이름은 강경산이었다. 금강을 감돌아 흐르는 강 언덕에 자리한 강경산은 예부터 풍치가 아름다웠으며 그 산정에는 수운정이라 부르는 정자와 함께 봉수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봉수란 높은 산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나라에 큰 일이 날 때마다 밤에는 불로 낮에는 연기를 피워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방법이다. 통신을 위한 수단이 바로 논산 옥녀봉 위에 있었던 것이다.

논산 옥녀봉에서 바라본 풍경2

이렇게 논산 옥녀봉에 대해 알아보고 돌아봤다. 논산을 돌아다녀 보니 곳곳에 명소 그리고 그 안에 이야기들이 마음으로 와닿는 도시였다. 논산=훈련소라는 공식을 깨는 그런 곳이었다. 장소의 이야기와 풍경이 여러 편견을 깨준 논산 옥녀봉에 대한 이야기는 맺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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