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논산의 지명 유래

1950년대 우리 어릴적 어른 들은 논산을 "논미","놀미"라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

이 말의 어원은 "`논뫼"였다. 1656년 편찬한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의 關梁(관량)항목에 「홍수가 나서 시진교가 무너지자 상류지역에 다리를 새로 놓았는데, 이 때부터 "논뫼다리(畓山橋)"로불려졌다.」라는 시진교(市津橋,현 등화동근처)를 설명하는 대목이나온다. "논뫼"는 논으로 둘러싸인 산이란 말이며, 이를 한자어로 답산(畓山)이라 표기하였다. 1970년대 까지 오거리에서 쌘뽈 여중,고 앞이 모두 논이었으며, 현재도 논산 시내는 논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 후로 영조대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처음으로 論山지명이등장한다. 실제 불리는 "논뫼"와 한자어 "답산"이 너무 차이가 나서 사람들에게 매우 혼란스러우니 그 음과 뜻을 살려서 논산으로 표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논산문화원 지명유래

 

논산을 가다.

논산의 여행지를 포스팅 하기 위해 가장 먼저 그 지역의 지명의 유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행을 하기 위해 많은 곳들을 찾아보고 가지만 실제로 그 곳의 지명의 유래나 그 지역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알아보고 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이 후 부터는 여행 전 그 곳 지명의 유래나 역사를 살펴 볼 것 이다.

 

오늘 함께 살 펴 볼 곳은 논산의 돈암서원이다. 돈암서원은 유네스코 지정문화재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과연 논산의 돈암서원은 어떤유래와 어떻게 조성되어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돈암서원

논산의 돈암서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원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서원은 조선 사회에 성리학이 정착하면서 사림세력이 지방에 설립한 사립 고등교육기관이다. 서원은 성리학을 연구하며 인재를 교육하는 강당이 있는 강학공간, 존경하는 스승의 위폐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 있는 제향공간, 그리고 유생들이 시를 짓고 토론도 벌이며 휴식하고 교류하는 유식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주변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인격을 갈고 닦는 인성교육에 중심을 두었다. 조선시대 서원중에서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의 9개 서원이 2019년 7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었다. 이들은 한국 서원의 총체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한국의 서원은 문화적 전통 또는 현존하거나 소멸된 문명과 관계되면서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를 지니고 있는 것 이라는 세계유산 등재기준을 인정받아 세계유산이 되었다.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에 걸쳐 건립된 이들 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이 교육과 사회 활동에 널리퍼져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또 이 서원들은 전국 각지의 지식인들이 제향을 올리고 강학을 하여 성리학 교육체계를 만들고, 그것에 꼭 맞는 건물을 지어, 성리학 가치가 담긴 독특한 역사 전통을 만들어 가는 공간이었다.

[출처] 돈암서원 앞 안내판

위의 내용처럼 논산의 돈암서원은 조선 사회에 성리학을 가르치는 고등교육기관으로 현재까지 그 모습을 이어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논산의 돈암서원 역사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

 

 

위 내용이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공감(하트) 그리고 댓글로 응원해 주세요. 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