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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병촌성결교회의 역사

병촌성결교회의 전경

병촌성결교회는 논산 최초의 성결교회로써 강경성결교회의 도움을 받아 1935년에 설립되었다. 이 후 1943년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일제에 의해 교회가 강제 폐쇄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 후 계속된 부흥 속에 안정적으로 교회가 자리매김 하던 중 1950년 6.25전쟁이라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되면서 병촌성결교회 역사적로도 큰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이 나를 이곳에 방문하게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공산군에 의해 희생된 66명 순교자들의 이야기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공산군은 토지개혁을 주장하며 지역민들을 압제하기 시작하였다. 그 압제에 맞선 교인들이 공산군의 무력에 의해 살해당한다. 압제가운데 정수일 집사(당시 31세)는 젖먹이를 안고 만삭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은 패전하니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며 내영혼을 받으소서 라는 고백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한 정수일 집사의 일화가 마음을 울렸다. 이런 상황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던 이들. 그런 그들의 순교정신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병촌성결교회에는 유해들이 잠들어 있는 곳과 탑을 세워 기념하고 있다. 그 모습은 어떤지 한 걸음 더 들어가보려고 한다.

 

논산병촌성결교회의 모습

논산 병촌성결교회 66인 순교기념탑
논산 병촌성결교회 순교자의 묘

논산 병촌성결교회 순교자의 묘 앞에 섰을 때는 먹먹함이 있었다. 당시를 기준으로 나와 같은 나이였던 순교자가 있었다. 그 분의 묘를 바라보며 나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나는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또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이들처럼 행동 할 수 있을지를 자문하면서 반성하게 되었다. 이 먹먹함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이유이지 않을까 싶었다.

논산강경지역 성지순례 안내판
논산 병촌성결교희 역사를 담은 안내판

이런 역사적인 내용들과 현장에 눈길을 사로잡혔다가 둘러보는 순간 정문 앞 수령이 꽤 되는 은행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은행나무의 크기를 더욱 느끼고 싶어 앞에서보니 안내 표지판에 아래와 같이 적혀있었다. 성동은행나무는 나무 밑 둘레 : 8m 직경은 2.3m 높이는 25m에 달한다. 조선 중종때 기인이자 도술가로 유명했던 전우치가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이곳에 이르러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꽂으며 자랐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하였다.

 

이런 역사가 있는 논산성동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순교자들을 천국으로 이끄는 길목에 큰 표지판의 역할을 하려고 서있는 것이 아닐 까라는 생각을 해보며 논산 병촌성결교회의 이야기는 맺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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